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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삼의 역사

앵두나무 우물가 2020. 7. 27.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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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蔘의 기원

서기 196~220년 중국 후한 헌제때 장중경의 저술한 상한논에 인삼을 배합 처방 21가지가 나온다.

이것이 인삼 관련 최초의 의약서이다.

서기 480년경 중국 양나라 도홍경의 저서 신농 본초경(神農本草經) 명의 별곡

약 中에 上 약의로 기록되어 있다

" 인삼이란 휘발성이 있어 차게 느껴진다.

오장을 보호한다.정신을 편안하게 한다.

혼백을 안정 식힌다. 나쁜 기운을 없앤다.

눈을 밝게 한다.마음을 열어주고 지혜를

더해준다. 오래 복용하면 수명을 늘려준다...."

 

人蔘의 나라별 근거

신라 - 성덕대왕  124월에 당나라 현종에게 공헌 했다는 기록이 있다.또한 성덕대왕 33년에 김지겸이 당나라 사절로 인삼을 보냈다는 기록이 있다.

말갈 - 말갈 실제위가 중국 당나라 현종 7년에 인삼을 공헌했다는 기록으로 만주 일대를 지배하던 세력으로 만주가 인삼

생산지의 하나임을 짐작하게 한다.

당나라-당 숙종때 이순이 쓴 해약본초에 신라에서 보낸 인삼이 마치 사람과 같다는 표현을 하고 길이 1척이 넘는 삼나무에협정하여 홍실로 조심스럽게 묵었다는 기록이 있다.

 

삼국시대                 

  • 고구려

주요 무역품으로 중국의 수교 내용이 92회 기록되며, 도홍경의 "명의 별곡"에 고구려 인이 지은 인삼 예찬에 대한시를 수록 하였다.

 

  • 백제

도홍경의 "명의 별곡"에 백제삼이 중국에서 상품으로 인정하고 양나라 중심으로 수교 물물 교환한 기록이 있다.삼국사기에 무령왕 124월 양무제에게 인삼을 보냈고,성왕 276회에 걸쳐 인삼을 중국에 수교했다

 

  • 신라

신라는 3국중에 가장 늦게 교역실시. 당나라 숙종때 이순이 지은 海藥本草 에 신라에서 보내온 인삼은 손발모양이 사람과  같다는 기록 삼국중 가장 적극적으로 당과 친교를 시도 했다.

진평왕 49년 당고조에게 인삼을 보내고 백제의 신라 침략을 억제하여 줄것을 호소하는등 국력강화에 인삼을 중요한 수단으로 이용하였다.

"삼국사기"-문무왕때 10만 지원군을 얻기 위하여 외교사절에 인삼 200근을 보냈다."

진평왕 이후 통일신라까지 80여차례 사신을 보내면서 인삼을 보낸것으로 추정,,

장보고의 해상 무역으로 교역이 활발했다.

          

조선시대

인조 이전에는 역관 무역 1회 행차시 20~30110근으로 제한하였다.

인조때 180근 교역으로 인삼 80근은  1,300석 가치를 가졌다.

정조 20년에는 년간 5,000근 교역및 회계인원 70명이 달하는등 교역이 활발했다.

당시 중국은 인삼이 생산되는 만주 지방은 청나라가 점령하여 명나라는 한국인삼이

절대 필요하였다. 

이때 인삼무역 독점권은 함북의주 출신의 가포 임상옥 으로

곽산군수,귀성부사를 역임하였다.

             

근대시대

1. 1905: 일제가 전매 실시로 착취수단으로 활용

2. 해방이후 : 국가가 일시 소금과 인삼을 전매 실시

3. 정부수립 : 재무부 소관 전매청 신설-홍삼 전매법 실시(100여년)

4. 19721230: 인삼 및 인삼 제품 규제에 관한 법률 공표로 일반 백삼도

          규제를 하고 전인삼 전매청장 권한 규제로 인한 인삼산업의 사향길에

          대응코져 인삼 정책대책 위원회 발촉,,금산 홍삼 전매, 인삼 및 인삼 제품

          규제에 관한 법률 폐지운동 전개

5. 1994: 김영삼 정부 행정 쇄신 위원회에서 인삼의 전매제도 폐지 결정

6. 1996629:홍삼전매법 폐지 및 인삼 및 인삼제품 규제에 관한 법률폐지

7. 199671~ : 인삼 및 홍삼 자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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